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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MENTOR


래퍼 블리스 김남욱 멘토님의 꿈 이야기



거리의 시인 래퍼 블리스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방황하는 시절과 어려운 시절을 거쳐 당당히 래퍼로 자리잡을 래퍼 블리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1.블리스님이 생각하는 래퍼란 무엇인가요?

MC가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MC에 대해서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MC는 MOVE THE CROWD의 약자로 '관중을 움직이다 혹은 관중을 감동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래퍼 중에서도 랩과 공연을 잘 하는 사람들을 MC라고 불러요. B.I의FOREVER의 가사 중 래퍼 딱지를 떼는 중 이젠 MC로 라는 가사가 있는데, 이게 그냥 래퍼에서 랩과 공연을 잘 하는 래퍼가 되겠다. 이런 의미를 갖는다라고 볼 수 있죠. 저도 MC가 되기 위해서 노력중입니다.^^

Q2.블리스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랩을 좋아했고 따라 했어요. 그 당시의 랩과 지금의 랩은 많이 달라요. 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했는데, 그 앨범이 제 인생의 큰 터닝 포인트였어요. 그 즈음부터 랩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중학교 1학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COME BACK HOME을 듣고 힙합에 빠지게 되었죠. 하지만 중학교 때까지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어요. 그때 부모님 말씀은 저에게 법이었거든요. 고등학교 때 늦게 사춘기가 심하게 왔어요. 공부가 하기 싫었고, 부모님 말씀도 듣기 싫었구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싫었어요. 그저 랩에 심취해 있었죠. 당시 제 유일한 낙은 랩 듣는 일이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대형 레코드 샵 사장님이 제가 구해달라는 CD를 따로 구해줄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고등학교를 보내고 수능 시험을 봐야하는 시점이 온 거예요. 부모님께는 성적표를 보여드리지 않은 채 거짓말로 넘어갔었는데 막상 수능을 봐야하는 시점이 오니까 겁이 나더라구요. 단기간에 점수를 올려야하니 수학은 포기하고 암기과목 위주의 공부에 올인했어요. 수능 점수가 오르긴 했지만 부모님의 기대에는 당연히 못 미쳤죠. 계속 음악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반대가 너무 심하셔서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토목공학과에 진학했어요. 솔직히 중학교 때 까지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전교에서 손꼽히는 등수에도 들어봐서 공부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다만 부모님과 더 많은 대화를 통해 일찍 진로를 결정했더라면 하는 약간의 후회는 있어요. 이런 저런 이유를 핑계로 꿈을 미루지 마세요. 놀 때 제대로 놀고, 공부할 때 제대로 하고, 어영부영 흐지부지 하면 아무것도 안돼요. 뭐든 할 수 있는 최선의 에너지를 써서 도전하세요.

Q3.원하는 전공이 아니라고 하셨는데 학과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성실하지 못했어요. 그냥 동기들, 선후배들과 어울려서 즐겁게 보냈죠. 또 공대다 보니 수학적인 것들이 많이 필요했는데, 고등학교 때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못 따라 가겠더라구요. 그러다보니 학과에 대한 흥미를 더 붙일 수가 없었죠. 복학 후에 가게를 운영하면서 학교생활을 했으니, 학교 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죠. 시험만 보러 갈 때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던 와중에 가게에서 큰 다툼이 생겼고 죽을 뻔 했어요. 그 순간 ‘아 내가 이렇게 살아서 될까? 10년 전에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너무 많이 변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퇴원을 하고 교수님을 찾아갔죠.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어요. 교수님께서 처음에는 웃으시다가 저의 진정성을 봤는지 늦지 않았으니 한 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되었죠. 열심히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2학년 1학기 때 제대로 해보자 해서 다른 일 접고 공부에 집중했어요. 2학기 때는 논문에 올인했구요. 그렇게 해서 대학원을 무사히 마쳤죠.

Q4.대학생활을 성실하게 하지 못하셨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블리스님의 20대는 어떠셨나요?

흠..저의 20대는 마치 롤러코스터 같았죠. 남들이 볼 때는 왜 저런 일을 하나 싶은 일을 하기도 했고, 사고도 많이 쳤어요. 하지만 저는 그런 저의 20대가 부끄럽다거나 숨기고 싶다거나 그렇지 않아요. 그때의 제가 있기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다른 일을 했지만 랩을 놓치는 않았어요. 혼자서 랩을 계속 했죠. 그러다가 29살에 대학원을 졸업했는데 손에 쥐고 있는 게 없는 거예요. 문득 ‘내가 서른 살이 되면 직업적으로 랩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동안은 부모님의 반대를 거스를 용기도, 가게가 주는 경제적인 것들을 포기할 용기도 없었어요. 저에게 랩은 풀지 못한 숙제 같은 거였는데 29살이 되고 보니 다 버리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더라구요. 마침 저의 인생 스승님 래피 형이 서울로 올라오라고 허락하셨구요. 그래서 다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어요. 그게 제 인생의 제 2막의 시작이었죠.

Q5. 거리의 시인 래퍼로 활동하고 계신데, 거리에 시인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되셨나요?

거리의 시인에 합류하게 된 건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이자 감사한 일이죠. 처음부터 거리의 시인 멤버 제안을 받은 건 아니예요. 영어 랩을 유창하게 할 수 있는 래퍼가 누가 있느냐라는 의뢰를 받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할까 하다가 제가 한다고 그랬어요. 그런 저를 데리고 거리의 시인 리더인 노현태 형이 김경호 밴드가 있는 합주실에 가셨어요. 김경호 형 앞에서 랩을 하고 콘서트 객원멤버로 합류하게 되었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운이 좋았어요. 전국 투어 콘서트 무대에서 랩하는 제 모습을 보고 노현태 형이 거리의 시인으로 같이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라는 제안을 하셨고, 그 이후 거리의 시인 멤버가 됐죠. 그 제안을 받아드린 것은 제 인생의 신의 한 수예요.

Q6.강의를 많이 하셨는데, 그만큼 많은 학생들을 만나셨는데 그 중 인상깊은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이었나요?

목적이 뚜렷한 학생들은 강의 중에 눈에 띄어요. 끼도 끼고 외향적인 모습도 그렇고요. 그런 학생들은 어김없이 연예인을 꿈꾸고 실제로 저한테 연락이 와서 답변을 해주기도 하구요. 오디션이나 회사를 소개해 주기도 했어요. 페이스북으로 메세지가 많이 오는데, 대부분 단순한 질문들이예요. 이를테면 '래퍼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질문들이죠. 이런 질문들은 그냥 무시해요. 하지만 래퍼가 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혹은 랩 가사를 쓰고 괜찮은지 물어보는 메세지에는 모두 다 답장을 해줘요. 간절함이 느껴지니까요.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은 중학생 때 저와 달꿈 강의로 만난 학생이었는데, 고등학생이 돼서도 랩 가사에 대한 조언을 구하는 메시지가 왔어요. 놀랐죠. 몇 년이 지났는데 그 학생한테 저는 여전히 꿈을 물어보는 멘토인 거예요. 정말 열심히 답변해줬어요. 마치 저의 학창시절 모습을 보는 거 같아서요.

Q7.학생들에게 한마디 해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다들 재능이 다르고 하고 싶은 게 다르잖아요.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고 자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29살에 랩 하겠다고 다 버리고 서울로 올라갈 때 주변에 저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어요. 대부분이 ‘너 안 될 거야, 다시 내려올 거야’라는 말 뿐이었어요.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란 걸 잘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말들이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죠. 그 때 저를 버티게 하고, 보란 듯이 보여주겠다라는 오기를 갖게 만든 건 제 자신이었어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나는 나를 믿고, 응원한다.’라는 내면의 소리였죠. 그리고 버텼어요.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꿈을 이루지 못하죠. 그건 꿈을 이루기 위한 여러 많은 힘든 시기를 얼마나 잘 버텨내는가에 달려있다고 봐요. 순간의 유혹에 넘어가서 포기하지 말고 버틸 수 있을 때 까지 버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