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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MENTOR


변리사 김광호 멘토님의 꿈 이야기



오늘 인터뷰 하시는 멘토님은 달꿈의 보름달 수석 강사이자
첨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지적재산권의 창출 및 보호에 앞장서고 계시는 변리사 김광호님 입니다.
지금부터 소리없이 강한남자 김광호님의 이야기를 전달 해 드리겠습니다!.!

Q . 변리사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변리사가 되기 전에는 제가 직접 특허를 이용해서 사업을 하는 발명가 겸 사업가였어요. 특허를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독점적인 지위를 영유할 것이라는 생각은 실제 회사를 운영 하면서 순진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허술하게 출원한 특허가 사업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을 겪게 되면서 특허만 믿고 시작한 사업은 처참하게 실패했죠. 사업의 실패 후에 특허의 출원 부터 그 운영방법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같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법률적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변리사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Q.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교육열이 과도한 학군에서 자라다 보니까 영어, 수학학원을 전전하다가 밤늦게 집에 가는 게 일과였죠. 억지로 하는데 성적이 나올리 없죠. 하루 종일 학원다녀도 성적은 겨우 중간 정도?
결과적으로 사춘기가 올 수도 없을 정도로 과도한 스케쥴에 시달렸던거에요. 좀 무서운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되면 사는 것 자체가 감옥이 되는 거에요. 삶 자체로부터 도망칠 수는 없잖아요? 죄목도 모르는데 형량은 평생인거죠. 사춘기가 오기전에 무기력감이 오더라구요. 요즘은 뉴스나 인터넷 기사들을 보면 이런 어린 학생들이 많이 있다는 기사를 볼때마다 안타까워요.
그때 저를 붙잡아 주었던 생각이 있었어요. 이 세상에 인구가 60억인데, 내가 어떤 고민이 있더라도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지금이 아니라면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최소한 한 명은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니까 무기력감이 극복되더라고요. 학생 여러분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에요. 단지 그걸 모르고 있을 뿐이죠.

Q. 대학시절 진로고민

저는 고등학생 시절에 게임개발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컴퓨터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대학교가 학원은 아니잖아요? 강의는 원론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고 당장 써먹을 만한 내용은 별로 없더라고요. 예를 들면 게임을 만들 때는 게임 엔진을 가지고 만드는데 대학에서는 게임 엔진의 구조를 가르치는 식이었어요. 결국 대학공부 따로 제가 하고 싶은 게임 프로그래밍 공부 따로 각각 하게 되었죠. 성공적이지는 않았어요. 최근에 저에게도 ‘달꿈’과 같이 진로를 도와줄 사람이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봐요.

Q. 많은 강의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성인 대상으로 강의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히려 강의 경험이 문제였죠. 돈을 내고 배우러 온 성인과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은 너무나 달랐어요. 처음에는 변리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알려주는데, 학생들이 집중을 못 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몰랐던 거에요. 강의 방향을 바꿔보았어요. 정보는 최소한만 전달하고 메시지를 전달하자. ‘열심히 해‘하고 말하면 너무 고리타분하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제 경험을 들려줬고처절하게 실패하고 진짜 죽을힘을 다해서 최선을 다한 후에 따라오는 그 후련한 기분을 알려주었어요.
어느 날 수업종이 치니까 학생들 사이에서 “아~”하고 탄식이 흘러나오고, 다음에 다시 안 오냐고 묻더라고요. 학생들이 수업이 끝난 게 아쉬운 거였어요. 그때의 경험은 아마 ‘달꿈’과 함께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보람이 아니었나하고 생각해요.

Q. 직업과 관련해서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저는 발명자라는 독특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잖아요. 발명자가 항상 뭔가 새롭고 멋진 것을 발명해 올 거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엉뚱하고 어쩔 때는 안타깝기 도한 발명들을 보게 되요.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서 내용을 말할 수는 없지만 발명자들이 가지고 오는 발명품들이 이해가 안 되서 계속해서 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다 보면 발명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렇게 되니까 제가 난감 해 지더라구요.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았기 때문에 발명자와 바로 그 자리에서 회의를 해서 발명을 완성 한 경우도 있었죠. 변리사 일을 하게 되면서 발명자 출신인 것이 도움이 되더라고요.

Q.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남겨주세요.

초기의 제 강의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무기력한 학생들이 너무 많았어요. 목표가 없어서 아니면 목표가 너무 멀어서 아무것도 안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던 거죠. 학생들에게 ‘실패해도 괜찮으니까 한 번 최선을 다해보지 않을래?’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다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만족감을 뛰어 넘는 깨달음을 얻게 되거든요. 그건 정말 사람을 변화시키는 경험이에요. 누구나 살면서 그런 경험을 꼭 한 번은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최선을 다한다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요. 물론 최선을 다한다고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최선을 다한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깨달음이 더 큰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제 메시지는 명확해요. 최선을 다하면 후회는 없다!

Q. 인터뷰를 마치면서 '_'

저는 변리사가 제 삶의 끝이 아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소프트웨어 개발자에서 발명가 겸 사업가로 다시 변리사로 변신을 계속해왔는데, 그 전의 경험이 항상 그 다음의 일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되더라고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변리사를 바탕으로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막연히 보람이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달꿈’과 만나서 그 보람의 형태를 구체화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무언가 잘 못하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제대로 해내면 후회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은 안해요. 그 후회들이 지금의 저를 만든 힘이었고 그 후회의 원인은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해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상으로 간다는 것 자체가 희망찬 일이니까요. 앞으로 어떤 미래가 저와 함께 하면서 변화하고 발전할지 기대가 되네요. 여러분도 희망찬 내일을 상상해 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