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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MENTOR


글쓰는 DJ이자 작곡가 래피 멘토님이 들려주는 꿈 이야기



많은 강의를 통해 진로와 꿈이라는 기로에 서 있는 학생들과
최전방에서 소통하고 계시는 래피님의 인생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1. 직업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해 주세요.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어서 한 가지로 설명하긴 어렵고, 직업별로 소개 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DJ입니다. DJ라고 하면 대부분 클럽DJ로 생각하시는데, 저는 외부행사나 파티장에서
음악을 틀거나, 라디오 진행을 하는 DJ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작사, 작곡, 편곡 활동 모두를 하고 있습니다.

Q2.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저는 공부가 좋아서 열심히 한 적은 없었어요.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하다보니 결과가 좋았고 그 결과로 목표를 이룬 케이스죠. 일단 저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2학년 때 까지 공부를 해 본적이 없어요. 쭉 놀았어요. 고2때가 되니까 놀다놀다 지쳐서 더 이상 할게 없는 경지까지 올랐어요. 너무 놀아서 노는게 재미가 없어지더라구요. 그 때 뭘 해야 재밌을까 하다가 만든게 락 밴드예요. 밴드를 결성하고 연습을 하는데 어느 순간 ‘아... 내가 여기에 재능이 있구나! 이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구나!’가 느껴지더라구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죠. 뭔가 해야 겠다라는 목적의식이 그때 처음 생긴거예요. 그리고 처음으로 하고 싶은게 생겼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반대를 심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생각해 낸게 대학이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가장 정정당당한 방법은 대학이다, 그냥 대학도 아니고 서울이나 서울인근에 있는 대학을 붙어야 한다’라고 생각했죠. 하루에 잠은 3시간씩만 자면서 1년간 미친 듯이 공부했어요. 고2 겨울방학 고3 여름방학은 서울에 있는 지인 집에서 지내면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에 가서 자리를 잡고 밤 12시까지 공부 했어요. 몇 년간 내내 놀았으니 공부가 될 리가 없죠. 근데도 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걸 해야하니까. 그렇게 꾸준히 하니까 공부하는 습관이 잡히고 공부가 조금씩 되더라구요. 수학은 단기간에 점수를 올릴 수 없는 과목이니 과감하게 포기를 했고, 나머지 과목들에 올인했어요. 신기한게 제가 음악 듣는걸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특히 팝송을 많이 들었는데, 그게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여름방학 겨울방학 미친 듯이 공부하면서 보내고 수능을 봤는데 점수가 잘 나왔고 경희대에 합격했어요. 제 목표를 달성한거죠.

Q3. 아버지가 음악을 반대 하셨으니 음악과 무관한 전공을 선택하셨을 것 같은데, 대학생활은 어떻게 하셨나요?

락하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왔으니 입학하자마자 학교의 유명한 락 동아리 오디션을 보러갔어요. 근데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오디션은 보지도 못하고 탈락했어요. 하늘이 무너지는거 같았죠. 그리고나서 동기들하고 놀기 바빴어요. 제대 후 복학하니까 정신이 들더라구요. 그때부터 1학년때 학점을 만회하기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죠. 부모님께 용돈도 받아서 써야하고... 그래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마침 제가 공부를 했던 타이밍이 섬유공학과 1명을 경성방직 장학금 대상자를 뽑고 있었던 때였어요. 졸업할 때까지 지원해 주는 장학금이었는데 학점유지를 해야 계속 받을 수 있는 장학금이었어요. 근데 제가 그 당시 덜컥 차석을 했거든요. 장학금 받을 수 있는 자격이 돼서 장학생이 되었죠. 이걸 계기로 제 대학생활이 180도 달라졌어요. 어떻게 보면 제 대학생활의 터닝포인트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수업만 들어가면 교수님이 “경방 장학생 누구야” 하면서 질문을 하시거든요. 문제 풀어보라고 하시고, 모두의 이목이 집중 되는거죠. 틀리면 창피하니까 공부를 할 수 밖 없는 거예요, 예습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시험을 잘 봤고, 학점도 4점대를 유지했죠. 분명 좋아했던 일이 아닌데 열심히 하다보니까 잘 하게 되고, 잘 하게 되니까 재밌더라구요. 나중에는 ‘아 내가 섬유에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도 했다니까요(웃음웃음)

Q4. 대학 생활을 굉장히 성실하게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음악활동은 어떻게 하셨나요?

군대 가기 전 우연한 기회로 시작한 게 DJ알바였어요. 당시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CD, 테이프 등으로 경로가 한정적이었어요. DJ들이 음악을 먼저 듣고 틀어 줘야하니까 가장 빨리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그렇다보니 저도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가장 빨리 접하는 사람이 된거죠. 외국의 새로운 장르들의 음악을 듣는데 신세계인거예요. 그 때 랩을 처음 들었는데 빠져 들더라구요. 저한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고 할까요. 락을 좋아하는 상태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더해진거죠. 군대 있을 때도 계속 음악을 들었어요. 제대 후 다시 DJ일을 했고, 복학해서는 힙합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그 동아리가 경희대 최초의 힙합 동아리 rap in으로 지금은 18대인가 그럴꺼예요. 제일 유명하다고 자부하고 있어요. 이후에 대학 힙합 동아리 연합을 만들었어요. 당시 연합 동아리 멤버들이 개코, 최자, 미료, 스컬 이런 사람들이었어요. 대단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죠(웃음웃음). 연합동아리에서 공연을 하는데도 뭔가 해소되지 않는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언더그라운드에서 이제 주류로 나가보자 해서 도전한게 m.net 프리스타일 랩배틀이라는 힙합 프로그램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쇼미더머니의 할아버지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프로그램에서 우승을 했고 그걸 계기로 방송일을 시작하게 됐죠. 라디오 진행도 하게 되었고, 3인조 힙합그룹으로 앨범도 냈어요. 잘 풀리는가 싶더니 사람일이 마음대로 안되잖아요. 사기를 당하는 바람에 흐지부지 됐어요. 근데 또 신기한게 돈이 없으니까 가수를 그만둬야지가 아니라 작곡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떻게 보면 그 시기가 저를 작곡가로 이끌어 줬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 이후부터 작곡 독학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궁지에 몰리니까 되더라구요. 얼마나 절실한가가 되느냐 마느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거 같아요.

Q5. 음악과 전공 둘 중 음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고민 많았죠. 졸업하는 그 순간까지도 고민했어요. 교수님들이 설득하기도 했구요.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스스로한테 ‘내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길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어요. 답이 나오더라구요. 음악이었어요. 전공을 살리면
제가 어떻게 살아갈지 뻔해요. 저는 경성방직 장학생이었으니까 경성방직으로 취업을 하고 남들과 똑같이 회사 다니면서 살아가는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음악을 포기하고 그 길을 걸으면 죽을 때 제가 후회할꺼 같더라구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음악을 해 봐야 후회를 안 할 것 같아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선택했죠. 지금도 음악을 선택한 일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후회도 없구요.

Q6.좋은 음악을 만들려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좋은 음악은 정말 순간이 모여서 만들어집니다. 길을 걷다가, 반신욕을 하다가, 이런 일상생활 속에서 튀어나와요.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하지만 이전에는 녹음기와 수첩을 늘 가지고 다녔어요. 의도하지 않았던 순간들에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잡아두지 않으면 그 아이디어는 다시는 떠오르지 않거든요,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떠오르는 것들이 좋아요. 그래서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고 녹음을 하거나, 수첩에 적어 놨어요. 오히려 어떤 곡을 쓰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책상에 앉으면 안나와요, 밤새 머리를 쥐어뜯고 생각을 쥐어짜내도 안나오더라구요, 물론 의뢰를 받아서 마감일이 정해져있는 경우는 억지로라도 만들죠, 근데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잘 된걸 본적이 없어요. 그때그때 잡아 놨다가 그것들을 가지고 확장시키거나 토대를 만든 작품의 결과물이 훨씬 좋아요. 아마 이런 경우는 대부분은 작곡가들이 그럴꺼예요. 노래의 핵심 아이디어, 멜로디만 있으면 노래를 풀어나가기 쉬워요, 연결해 나가기만 하면 되거든요.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면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잡아두세요. 그게 좋은 작곡가 되는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첫 걸음입니다.

Q7. 많은 강의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음악 쪽 일을 하다보면 본인은 괜찮은데 주변에서 등수를 매겨요. 주변사람에는 가족,친구 모두 포함이죠. 예를 들면 ‘너는 왜 TV에 안나오니?’ ‘네 음악은 음악차트에 안 올라 가니?’ 이런 말들이요. 겉으로는 아무렇치 않은 척 했는데 상처가 되더라구요. 자괴감이
들고 자존감이 하락하고...저는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한창 자존감이 떨어져 있을 시기에 달꿈을 통해서 초등학교 강의를 간 적이 있어요. 그 때 한 학생이 삐뚤빼뚤하게 적어 준 글이 하나 있는데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어떤 글이었냐면
‘선생님이 재미있고,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라는 글이었거든요. 꿈이 생겼다라는 5글자가 마음에 박히더라구요. ‘꼭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할 필요가 있을까, 비록 최고에 있지는 않지만 내가 누군가에게는 꿈의 롤모델이 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자존감 회복에 큰 힘이 되었던 순간이었고 지금까지도 저한테 힘이 되는 말이기도 하죠. 그 이후부터는 주변사람들이 하는 말에 개의치 않아요. 오히려 ‘너는 회장이 될 수 없니?’라고 반문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Q8.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남겨주세요.

우리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이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일단 처음에 선택 할 때 신중하게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해야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끝까지 버티세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입니다. 저처럼 말이죠. 다만 아닌거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버리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방향전환을 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향만 조금 틀면, 보이지 않던 무수히 많은 기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왜 네비게이션이 길을 잘못들면 경로를 재탐색 하잖아요. 똑같습니다.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마시고 경로를 재 탐색해 보세요.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길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카카오톡, 인스타그램 모두 재탐색을 통해 성공했습니다. 무라카미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누구나 다 아는 소설이죠. 처음에는 노르웨이 숲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된 거 아시나요? 책 제목만 바꿨을 뿐인데 베스트셀러가 되었죠. 만약 그대로 포기했다면 베스트셀러 상실의 시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길에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가시밭길을 지나야 꽃길이 나옵니다. 가시밭길을 버텨 꽃길을 걸으시길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