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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MENTOR


이미지컨설턴트 구승하 멘토의 꿈 이야기



오늘 인터뷰 하시는 멘토님은 개인이나 단체의 성격과 특성을 분석하여 그에 적합한 이미지를
만들어주고 화술, 매너, 대화태도등을 중심으로 고객의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해주시는
미소가 아름다운 이미지컨설턴트 구승하님의 이야기를 전달 해 드리겠습니다*.*

Q. 이미지컨설턴트가 되신 계기가 궁금해요.

저는 이미지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갖기 까지 참 많은 길을 돌아서 온 것 같아요. 대학원을 다니다가 늦은 나이인 20대 후반에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갔어요. 주변에서는 빨리 졸업하고 취직이나 하지 그 나이에 무슨 어학연수냐고 생각하는 시선들도 있었지만, 저는 내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자신이고 인생이란 길을 크게 놓고 봤을 때 꼭 남들과 똑같은 템포로 맞춰서 걸어 나갈 필요가 반드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어학공부도 공부지만 더 크고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어요. 세계 각국에서 모인 친구들과 즐거운 생활을 하다 보니 어느 덧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죠. 그 때 슬슬 조바심이 났던 것 같아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나는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막연하게 대학원으로 돌아가서 졸업장을 따는 것은 제 인생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노트를 펼쳐놓고 백지 위에 하나하나 적어보기 시작했어요. ‘내가 잘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은 무엇인가, 그리고 나의 장·단점 등을 브레인스토밍 해보며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죠. 저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과 조직에 얽매이기 보다는 조금 더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도 들어주고 소통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패션, 이미지, 외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다는 결론을 내렸죠. 이를 토대로 직업군을 생각하다 보니 쇼호스트, 작가, 강사, 컨설턴트 등으로 정리가 되었어요. 쇼호스트는 실제로 준비하던 시절이 있었구요. 현재는 이미지 컨설턴트로 활동하면서 ’달꿈‘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강의를 하게 되었네요. ’작가‘로서의 꿈도 몇 년 안에는 꼭 이뤄내고 싶어요.





Q. 승하님의 학창시절은 어떠셨나요?


학창시절 저는 유별나게 두드러져 보인다거나 모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평범한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성적은 중상위권을 유지하고 학급 반장을 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절대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외모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교복도 몸에 꼭 맞게 수선해서 입고 양말 등 소품에도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나네요. 학창시절 별명은 ‘앙드레 구’였어요. 요즘 친구들이 아는지 모르겠는데 제 학창시절에는 독특한 헤어와 화이트컬러의 의상만 고집하는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이 유명했거든요. 저 역시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저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곤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죠. 교외활동으로는 학교 신문을 만드는 동아리 연합 단체에서 회장을 맡기도 했었어요. 25개의 고등학교 신문 편집 동아리가 모인 단체였는데 서로의 의견이 다르다 보니 리더로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보듬는 것이 참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것을 그 때 처음 깨달았죠. 그 때 성적도 많이 떨어지고 정신적으로 조금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부모님은 다 그만두고 공부에 매진하라고 하셨지만 저는 어린 마음에도 내가 한 번 맡은 일인데 무책임하게 그만둘 순 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결국 임기를 다 끝마칠 때 까지 활동을 계속했어요. 그 이후로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무조건 받아들이기 보다는 과연 이 일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 여부를 먼저 생각해 보는 습관이 생겼죠.

Q. 대학시절에 어떤 진로고민을 했나요

제 어렸을 때 꿈이 ‘방송국에 다니는 사람’이었어요. 어려서는 드라마에 나오는 유명인들을 마음껏 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컸던 것 같아요. 드라마도 좋아해서 방송국PD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래서 전공도 방송과 관련이 깊은 광고 홍보학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거의 한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어울리던 여고시절과는 다르게 여러 지역에서 모인 다양한 선·후배, 동기들과 만나서 놀기도 하고 공부도 하며 지내다 보니 시간이 흘러 어느 덧 4학년이 되었죠. 동기들은 하나 둘 씩 광고나 홍보 대행사에 취직을 하고 또 준비를 하는데 저는 막연히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결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광고를 공부하면서 흥미는 있었지만 ‘과연 내가 이 일을 직업으로 삼아서 즐기면서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봤을 때 결론은 ‘아니다’였거든요. 뒤 늦은 4학년 시기에 진로고민이 시작된 거죠. 결국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진로결정을 유예하는 선택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 내가 참 철이 덜 들었었구나.’라고 느끼게 돼요. 그렇지만 저는 제 선택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를 하거나 한 적은 없어요. 세상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본인이 스스로 겪은 일들 중에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선택에 대해서 그 결과가 좋았든 나빴든 간에 분명히 얻게 되는 깨달음이 있거든요.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달꿈의 멘토님들을 만났다면 또 다른 인생이 열리지 않았을 까 가끔 생각해 보곤 합니다.

Q. 많은 강의를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여러 학교를 다니면서 적게는 20명 남짓에서 많게는 120여명의 학생들을 만나곤 하는데요. 지난겨울에 다녀온 횡성의 강림중학교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전교생이 18명인 시골의 작은 학교였어요. 아침 일찍 여유롭게 출발했더니 특강 시간보다 1시간 빠른 시간에 도착하게 됐죠. 진로부장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안내해 주시며 따뜻한 차와 직접 만드신 수제 강냉이까지 내주시면서 환대해주셨어요. 서울에서 먼 길 오느라 배고프겠다며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셔서 학교 식당으로 가게 되었죠. 보통은 학생식당, 교직원 식당이 구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강림중학교는 전교생이 18명이다 보니 교사, 학생 구분 없이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더라구요. 저는 그 모습이 너무 색다르면서도 보기 좋았어요. 학생 수가 많지 않다보니 한 명 한 명 개인지도가 가능하다고 하시더군요. 사제지간이 아니라 꼭 엄마가 아이들을 챙기는 것 같은 모습이었고 사랑이 느껴져서 너무 좋았어요. 아이들도 티 없이 순수하고 착하고 선생님들도 40분씩 걸리는 거리를 매일 출퇴근 하신다는데 표정이 밝고 편안해 보이셨어요. 입시전쟁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교육 현실 속에서 이런 학교도 있다는 사실이 참 따뜻하게 다가왔어요.

Q. 직업과 관련해서 가장 기억이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취업을 앞두고 준비 중인 대학교 4학년 남학생들의 이미지 컨설팅을 해준 적이 있는데요. 그 학생들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자소서나 기타 자격증 등은 준비가 되었는데, 자신감 없어 보이는 외모가 걱정이라며 저를 찾아왔었죠. 학생들은 과연 이미지 컨설팅이 중요한지 또 얼마나 이미지 변신이 가능할지 의문을 갖고 있었죠. 보통 이미지 컨설팅하면 연예인, 정치인 등 특정 사람들 혹은 여성들만 관심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각자에게 맞는 퍼스널컬러를 진단해 주고 그에 따른 정장 선택법, 헤어, 비즈니스 매너 등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었죠. 학생들은 컬러 진단 툴에 의해서 본인들의 이미지가 달라 보이는 것을 정말 신기해하고 만족해 했어요. 요즘에는 취업을 위해서 성형수술이나 시술 등에 큰돈을 투자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본인의 이미지를 훨씬 호감 가는 인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요. 학생들은 컨설팅이 끝나고 돌아가면서도 이 시간을 통해 본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거듭 감사인사를 했죠. 그리고 얼마 뒤에 본인들이 원하는 곳에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론, 이미지 변신만으로 취업에 성공한 건 분명 아닐테죠. 본인들이 간절히 바라고 수많은 노력들을 했기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에게도 정말 기분 좋은 소식이었고 이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이유죠.

Q.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응원의 메시지 남겨주세요.

저는 학생들에게 두 가지를 얘기해 주고 싶어요. 첫째는 진로를 선택함에 있어서 나 자신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미지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갖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시행착오가 있었거든요. 나의 직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진부하게 들리겠지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모험에 인생을 걸어보고 마음을 열고 새로운 기회와 아이디어를 맞이하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네요. 직접 가보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의 길이거든요. 해도 후회가 되고 안 해도 후회가 된다면 내가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 후회해도 늦지 않아요. 일단, 도전해 보세요. 반드시 길은 열립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인생의 ‘멘토’를 꼭 만들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내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세상은 절대로 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거든요. 인생의 길을 걷다 보면 매 번 좋은 순간만 있을 수는 없고 때로는 지치고 힘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요. 그럴 때 주위에서 격려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의 멘토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정말 기운이 나거든요. 저에게도 그런 멘토가 계시는데요. 제가 일이 잘 안 풀려서 힘들어 할 때 그 분이 제게 그러셨어요. ‘인생이란 해안으로 밀려드는 파도를 타는 ‘서핑’과 같다. 파도를 잘 타려면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정 어렵다면 파도를 잘 타는 사람 곁에서 도움을 받으면 된다. 내가 승하샘의 곁에서 항상 지켜보며 도움을 주겠다‘ 저는 그 때 제 멘토님이 해주신 말이 얼마나 감사하고 크게 마음속 울림으로 다가왔는지 몰라요. 저도 여러분의 멘토가 되어드리고 싶어요.

Q. 인터뷰를 마치면서 ‘_’

인터뷰 질문에 답변을 생각하면서 저도 제 학창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나서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제 인생의 가치관, 미래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부자’가 되려면 부자를 따라 다녀라‘라는 말이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부자‘ 란 꼭 돈이 많은 사람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미래에 빛을 밝혀줄 힘을 가진 인물을 포괄적으로 의미해요. 각자 스스로에게 맞는 진로를 선택해서 그 분야에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즐기면서 삶을 살다보면 자연히 ’부‘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네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행복한 삶이 되기를 기원해요. 저도 제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하여 돕고 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